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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나에게만 놀랍고 소중한
작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흔들리며 빛나는 청춘의 계절들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서로를 향하며 그리는 마음의 삼각형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
『나주에 대하여』 『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첫 장편소설
확신하건대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어떤 미래에 문득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김화진의 첫 장편과 함께 보낸 눈부신 계절의 한때를. _정이현(소설가)
김화진의 첫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21년 등단 후 1년 반 만에 묶어낸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로 시작해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까지, “마음의 세밀화”(편혜영)라고 표현할 수 있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공고히 다져온 김화진. 그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마음의 결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많은 문학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음은 물론 『나주에 대하여』로 2023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학적 성과 또한 여실히 증명해낸 바 있다. “감정의 행방을 추적하는 김화진의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섬세했다”(편혜영), “정서를 정확하게 다룰 줄 아는, 자신만의 문장의 결을 지닌 작가”(이기호)라는 심사평처럼 그는 타인의 마음이라는 영원한 미지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그것을 정확한 문장들로 서사화하는 데 ‘진심’이다.
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생애를 모두 담고 있으니, 작가이자 ‘마음 탐구자’인 김화진이 단편보다 더 긴 이야기 형식을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동경』에는 일과 꿈,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가족이라는 삶의 주요한 화두들 앞에서 흔들리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이제는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수도, 그렇다고 어엿한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서른 언저리의 나이, 자주 혼란스럽고 때로 아프기도 한 삶의 분기점에서 만난 그들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 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서로에게 이끌린다. 서로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내는 인력으로 가까워졌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세 사람은 좀처럼 정리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관계의 삼각함수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나간다. 늘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훗날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성장통의 계절들. 김화진은 그 세 인물이 만들어가는 복잡다단하고 다채로운 색채를 띤 마음의 삼각형을 반짝이는 청춘의 시간들로 그려낸다.
정이현 소설가가 “김화진은 언제나 ‘진짜’에 대해 쓰려 한다. 진짜 친구, 진짜 꿈, 진짜 기분, 진짜 마음에 관하여”라고 썼듯이 『동경』에는 특별한 이야기나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대신 우리가 정말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삶의 순간들이 눈부실 정도로 선명히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낸 듯한 문장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서로가 영원한 미지로 남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되는데, 그것은 김화진의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위로가 된다.
아름다운 삼각형을 원하는 건 나만의 꿈일까. 언제나 삼각형을 상상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둘은 너무 적고 넷은 너무 많으니까. 나에게 둘이 의미하는 것은 애인이었고 넷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이었다. 셋은 친구였다. 나는 둘이나 넷보다 언제나 셋만을 바라왔다.
_23쪽
“가끔 약에도 체해. 그럴 때 있잖아. 선의에도 걸려 넘어지잖아.
그런 걸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어. 우린 겨우 서른 언저리잖아.”
소설의 1부에는 세 사람의 화자가 등장한다. 아름과 민아와 해든. 첫번째 화자인 아름은 망설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망설이면서도 가장 성실히 자기 자신을 찾아 나아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름과 해든은 민아가 진행하는 인형 리페인팅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까워진 세 사람은 수업 이후에도 친구로 지내게 된다. 이후 민아가 차린 리페인팅 회사에서 일하게 된 아름은 작업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작업물이 SNS에서 공유되며 나름의 유명세를 얻기도 하지만, 해든의 권유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신이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며 점점 회사 일에 불성실해지는 자신을 발견해가던 아름은 결국 무심결에 민아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옳은 선택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민아를 떠나게 되는 일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뭔가를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렇게나 무겁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_40쪽
한편 민아는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정확히 찾은 사람이다. 딸인 자신에게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심어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자,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미술을 하고 싶었음에도 가능한 한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는 강단에 서서 교보재를 정리할 때 한 번의 헛손질도 하지 않는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손이 야무진 여자”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팔의 흉터들처럼, 남모를 상처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민아는 모든 면에서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하지만 아름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회사를 떠나고, 어머니의 병환 소식이 들려오며 조금씩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슬픔은 마음 한구석에 송진 같은 고체 형태로 존재하다가 어떤 녹는점에서 녹아 흐른다. 액체가 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슬픔의 녹는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나 체온, 혹은 해질녘의 버스 정류장이나 혼자 멍하니 보내는 주말의 긴긴 낮일 수도 있다.
_66~67쪽
해든은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하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다. 방황하던 시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아름과 함께 민아의 인형 리페인팅 수업을 듣지만, 자신이 본래 하고자 했던 일은 사진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자신만의 작업을 해내간다.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폭력적인 아버지를 원망하는 한편, 그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무너지거나 지어지고 있는, 미완의 건물을 작업 대상으로 삼는다. 건강에 좋다는 토마토만을 먹으며 불균형한 식사를 하고, 스쿼트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순적인 자신의 모습을 조소하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해든은 아름과 함께 일하게 되며 그에게서 좋은 점과 견디기 힘든 점들을 함께 발견하지만, 그럼에도 자신과 달리 투명한 마음을 지닌 아름이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말이야. 마음에 있는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말을 못해도 있는 마음 같은 게 있어. 그 마음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어. 알아도 말하지 못하고 몰라도 비슷한 걸 말해버리는 사람도 있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건 진짜야.
_112쪽
사회에 나와 일로 만난 세 사람이지만 친구로, 동료로 균형 잡힌 삼각형을 그리며 지내던 그들의 관계는 아름이 민아의 회사를 떠나 해든과 사진 일을 하게 되면서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삶의 분기점에 이른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일들이 한 번에 겹쳐 일어난다. 2부에서 여러 계절을 보내며 아름은 직업을 바꾸고, 민아는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수술대로 향하고, 해든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첫 사진집을 준비한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한편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서로를 오해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던 그들은, 사진집에 들어갈 “희디흰 색”이 필요하다는 해든의 말에 한겨울의 삿포로로 향한다. 그리고 그 여행은 그들의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다.
섬세한 문장들로 그려낸 시절 기록
새로운 관계를 통해 연결을 모색하는 우리 시대의 성장담
『동경』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이십대와 삼십대 청춘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족을 중심으로 주된 관계가 형성되었던 지난 세기를 지나, 온전한 개인으로서 타인과 맺는 관계가 더욱 주요해진 오늘날의 우리들. 일을 통해서 만난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얼핏 순진해 보일 수 있는 질문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그와 같은 고민으로 시작해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며 나아가는 이야기는 관계를 통해 성숙해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성장담으로 확장된다. 『동경』의 세 사람이 살아낸 여름부터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으로 이어지는 한 해의 시간들은 김화진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장들로 기록된다. “확신하건대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는 어떤 미래에 문득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김화진의 첫 장편과 함께 보낸 눈부신 계절의 한때를”이라는 정이현의 말처럼, 김화진의 소설을 읽는 일은 그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한 시절을 보내는 일과 같다. 김화진이 이렇듯 ‘진짜’ 삶을 그려낼 수 있는 까닭은 아마 그가 지닌 타인에 대한 애정과 반듯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그는 마치 예민한 감광판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감지하고 그것을 인화하듯 문장으로 써낸다. 어쩌면 집요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타인에의 관심. 문학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타인에 대한 관심은 문학에 있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재능이 아닐까?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애정, 그것은 작가 김화진의 뛰어난 재능이고 그가 앞으로 써나가는 소설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걱정과 슬픔을 털어놓는 데 서툰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모이면, 가끔 자기도 모르게 말하려던 것도 아닌데 꾹꾹 눌러두었던 걱정과 슬픔을 털어놓는 순간을 목격하곤 합니다. 단한히 봉해놓은 마음을 꺼내게 하는, 소설이 만들어주는 그런 순간이 좋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